●마음으로 찾아 가는 寺(46회 차-2)
1)에 이어서 계속 적는다.
禪石山(742m)은 바위가 없고, 등성이가 넓고 편평하여 밭을 일구어도 될 정도로 흙산이며, 숲이 좋고 비탈이 가파르지 않아 산길이 산책길처럼 느껴진다. 일명 서진산이라고도 하며 선석산의 이름은 선석사에서 유래했다고 할 수 있다.
애국 충절의 고장 성주의 월항면 인촌리에는 세종 20년(1438년)~24년(1442년)사이에 만들어진 19기의 태실이 유존하고 있는 세종대왕 왕자 태실을 끼고 있는 선석산이 있다. 산세도 뛰어나지만 조선왕조의 태실을 품고 있는 산이기에 그만큼 가치가 있는 산이다.선석산의 유래는 선석사에서 유래되었다.전설에 의하면 근처 금오산에 큰 범이 있어 포수들이 잡으러 옵으로 범이 이산에서 하룻밤을 세우고 피난하였다 해서 서진산 (棲鎭山)으로도 불려지고 있다.
여기에 세종대왕태실 생명문화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아래에는 인촌저수지가 있다.군데군데 억새가 바람에 나뿌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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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禪石寺-경북 성주군 월항면 세종대왕자태실로 616-33
대한불교 조계종 제9 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인 선석사는 성주군 서진산 중턱에 위치했으며 성주군에서는 가장 커다란 사찰이다. 경북 지역의 다른 사찰들과 마찬가지로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 버려 창건 연대, 창건 인물 등은 정확히 알 길이 없으나, 단지 692년(효소왕 1) 의상대사가 신광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며, 창건 당시는 지금보다 서쪽이었고 고려 말 나옹 스님이 지금의 자리로 옮기려 터를 닦다가 큰 바위가 나와 지금의 선석사라 명하였다. 이후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전소된 뒤 1684년(숙종 10) 혜묵, 나헌 스님 등이 중창하고 1725년(영조 1) 서쪽의 옛터로 옮겼다가 1804년(순조 4) 서윤 스님이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대웅전, 명부전, 칠성각, 산왕각, 어필각, 정법료를 지었으나 그 뒤 화재로 어필각은 소실되었고 최근 대웅전 뒤 대나무 숲 아래 야외 미륵부처님을 조성하였다. 특히 조선 시대에 태실을 수호하는 사찰로 지정되었다. 절에서 약 200m가량 떨어진 곳에 세종의 왕자 태실이 있는 태봉이 있으며 이는 태실 수호 도량으로 영조로부터 어필을 하사 받기도 하고 왕조의 권력 투쟁으로 인한 태실의 변화를 지켜보아야 했다. 숱한 역사의 굴곡을 함께 하여온 선석사는 이제 성주 고장 사람들을 위한 도량으로 거듭나고 있다. 봄마다 아름다운 도량에서 열리는 산사 음악회를 비롯해서 문화 공간, 수행 공간, 교육 공간으로 지역주민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사찰 규모도 상당하고 주변 경관과도 잘 어울린다.


일주문도 대웅전 현판이 보이도록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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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전,칠성각,산신각 등은 일반 사찰과 다름이 없지만 이름이 특이한 것이 몇 가지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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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실법당은 柱聯이 모두 한글이다.

이 건물은 앞과 뒤 현판의 글이 다르다.
앞은 雲布慈門이다.운포(雲布)’와 ‘자문(慈門)’이 결합된 표현으로, ‘구름처럼 자비의 문을 펼친다’는 의미의 불교적 표현입니다. 주로 수행자나 불교 경전에서 도력(힘)과 자비, 중생 구제의 상징적 의미로 사용된다.
뒤에는 雨花로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는 상서로운 현상"을 의미하며,주로 불교 경전인 "법화경"에서 부처의 설법 중 매우 경사로운 장면으로 묘사됩니다.조선시대에도 우화는 태평성대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며,조정에서는 이를 기뻐해 다양한 혜택을 베풀기도 했다.
건물의 앞은 雲布慈門

건물의 뒤는 雨花.

보통 鐘閣이라 하는데 여기서는 圓音閣이라고 하네.
불교에서 부처님의 음성을 상징하는 종각 또는 누각을 의미하며,사찰에서 종소리를 통해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고 성불을 기원하는 공간으로 사용된다.

운상회상괘불전.

世宗大王子 胎室.
세종의 왕자들 중에서 문종을 제외한 18명의 왕자와 원손 단종의 태실 등 19기의 태실이 군집을 이루고 있다.世祖 것도 있네..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은 1975년 12월 30일에 경상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88호로 지정됐다가 2003년 3월 6일에 사적 제444호로 승격지정됐다.


단종(元孫) 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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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宗의 동생이며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世祖大王 태실이 왜 여기에 있을까?

태실로 오르는 길과 태실에서 보는 선석산이며 태실은 선석산이 품어 안은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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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深源寺-경북 성주군 수륜면 가야산식물원길 17-56.
심원사(深源寺)는 통일 신라 시대인 8세기경에 창건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시대 학자인 도은 이숭인(李崇仁)이 시에서 “심원 옛 절은 가야산 속에 있는데…”라고 심원사를 이미 오래된 사찰이라 언급한 것으로 보아, 고려 시대 훨씬 이전부터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숭인이 심원사 장로에게 시를 올렸으며, 호군 송천우가 이성계(李成桂)의 군사를 피해 심원사로 숨었을 때 사문에서 이들을 교화하여 돌려보낸 고승의 이야기가 전한다. 조선 중종(中宗) 때 승려 지원이 크고 화려하게 중수하였으나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소실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중창을 거쳤는데, 1799년(정조 23)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 폐사되었다는 기록이 있어 이미 18세기경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현대로 와서 2003년에 성주군의 ‘국립공원 가야산 지구 문화 관광 자원 복원 계획’에 의해 다시 중창되었다. 2003년 심원사를 복원하기 전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그 결과 남북으로 약 80m, 동서로 약 100m 정도의 대지에 4단의 계단식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금당 3개를 갖춘 전형적인 통일 신라 시대의 산지 가람 터임을 확인하였다.

대웅전.

문수전.

극락전.

삼층석탑과 석조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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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전,관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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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전과 약사전 뒤의 부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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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부처상과 설치미술가 안성금 씨가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심원사는 가야산 국립공원에 위치한다.

심원사 주차장에서 본 상아덤을 국립공원 직원이 설명하여 주었다.
嫦娥(상아)는 달에 사는 미임의 이름이고 덤은 바위(巖)를 뜻한다.
상아덤은 기암괴석의 봉우리로 가야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萬物像능선과 이어져 최고의 전망을 감상 할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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