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으로 찾아 가는 寺(34회 차-1)
1.일 자:2025.4.1(화)
2.누구랑:배○호,정○화,我 心齋
3.오늘 찾은 寺:경북 경주시에 있는 전통사찰 중 南山에 위치한 곳을 탐방한다.
4.일 정:09시 구서역~10시 20분 보리사~12시 30분 칠불암~14시 망월사~ 15시 40분 천룡사지~17시 30분에
부산 도착 후 저녁(다른 일행 2명 참석)
5.기타:
1)작년 12.17일 34회 차(212번째인 金井寺)를 마지막으로 冬節期이라 쉬었다.
2)경주 남산은 야외 박물관이라해도 좋을만큼 다양한 유물을 간직한 곳이다.
3)예정에 없던 경주 남산에 유일한 國寶인 七佛庵磨崖佛像群(칠불암 마애불상군)을 본 것은 정말 좋았다.
4)여기저기 있는 불상과 석탑은 별도로 모아 "34회 차-3" 기록한다.
213. 菩提寺:경상북도 경주시 갯마을길 41-30 (배반동)
경주시 남산자락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로 이 보리사 초입에 높이 2m의 바위벽에 새겨진 마애불이 있다.보리사의 석불좌상보다 후대에 만든 것으로 여겨지며,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추정된다.바위벽을 얕게 파 높이 1.5m의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약 0.9m 정도의 작은 부처를 도드라지게 새겼다.
양쪽 뺨 가득히 자비 넘치는 미소를 간직하고 앉아 있는 불상은 전체적으로 조각 수법이 거친 편이다.특히 위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선을 그은 것처럼 얕게 새겨 매우 독특한 조각 수법을 나타낸다.
불상의 높이는 1.1m에 지나지 않으나,발아래에는 급경사로 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볼 때 하늘에 떠 있는 느낌이다.
깨끗한 것이 눈에 띄었다.

![]() |
![]() |

주차장에서 가는 길도 역시 깨끗하고 조망도 좋았다.
![]() |
![]() |
소나무도 잘 자랐다.
![]() |
![]() |
菩提寺 磨崖石佛이 이곳의 자랑거리다.



214.望月寺: 경북 경주시 포석로 682-17.
대한 불교 원효종 사찰이며 원효종의 중요한 사찰로 꼽힌다.대한불교 원효종은 우리나라 18개 불교 종단 가운데 하나로 신라의 원효스님을 종조로 하여 1963년 경주에서 해인스님이 대한불교원효종 포교원을 창종하고 해인스님이 초대 종정이 되었다. 그 뒤 1967년 8월 망월사가 본원이 되었으며,1977년 12월 대한불교원효종이 되었다.현재 총무원은 서울 안양암에 있고,주요 경전은 <원효종성전>인데 1967년 망월사에서 발간되었다.오랜 역사와 위상에 비해 소박한 사찰이며 대웅전,요사채가 있으며 연못 안에 놓인 불탑인 연화탑이 인상적이다.

특이한 것은 출입문에 있는 四天王像이다.다른 사찰에서는 보지 못하는 문틀에다 그린 것이다.

![]() |
![]() |
석탑은 보물로 지정되었다.


![]() |
![]() |
215.망월사 바로 옆에 三佛寺가 있어 탐방하였다.
삼불사(三佛寺)는 경주 남산의 선방곡(승방곡)에 있는 사찰이다.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유물로 미루어 보아 신라 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오랫동안 폐사된 것을 최근에 중창했다. 사찰 건물로는 법당과 산신각, 요사채가 있고 삼존 석불입상(삼체석불)과 통일신라 이전에 조성된 2기의 석탑이 있다. 특히 1923년에 발굴된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은 7세기 작품으로 추정되며 칠불암(七佛庵)의 삼존불상과 더불어 경주 남산에서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1963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석탑 2기는 통일신라 이전의 것이다. 경주 남산의 불교문화를 이해할 때 참고될 수 있는 사찰이다.

이곳에서는 아래 立像만 보면 될 것같다.


이 글은 마음에 든다.
세심단속문(洗心斷俗門)이란 음각된 비석이 서 있다. 세속의 인연을 끊고 마음을 씻은 후, 불가(佛家)로 들어가는 문이란 뜻이다.

216. 天龍寺: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백운대길 101-388.
서남산의 최고봉인 고위산(高位山) 정상 부근에 자리한 천룡사는 신라시대 때 천녀(天女)와 용녀(龍女)라는 두 딸을 가진 부모가 딸들을 위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천룡사는 지리적으로 큰 역할을 하는 사찰이었다.그것은 이 절이 계림(鷄林) 땅을 흐르는 한 줄기의 객수(客水)와 한 줄기의 역수(逆水)의 근원지에 있으면서 객수와 역수의 조화를 유지시키는 위치에 있고 그 일을 수행한다는 것이다.이러한 지리를 아는 당(唐)의 사자(使者) 악붕귀(樂鵬龜)는 “이 절을 파괴하면 나라가 망한다.”라고 했다.신라 말기에 와서 어느 사이엔가 절이 폐사가가 되고 과연 나라도 망하고 말았다.이처럼 신라시대에 천룡사는 없어지면 나라가 망한다고까지 존숭되고 석가 만일도량(萬日道場)이 열릴 정도로 중요한 사찰이었다.천룡사에서 열렸던 석가 만일도량에 관해서는 고려 때 최승로가 지은 글이 남아 있는데,10,000일이면 거의 30년에 해당하는 셈인데,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끊임없이 법회가 열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신라의 대표적 사찰 가운데 하나인 천룡사가 언제 폐허가 되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주차한 곳에서 1km 된비알을 30분 정도 오르면 탁 트인 곳에 나타난다.

현존하는 유물은 삼층석탑이다.


![]() |
![]() |

![]() |
![]() |
2)에서 국보인 칠불암마애불상군(慶州南山七佛庵磨崖佛像群)을 적는다.
'旅行(僧伽藍摩을 찾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慶州 南山 (0) | 2025.03.26 |
|---|---|
| 붉은색 수천 개의 사찰이 끝없이 이어진 장관 (0) | 2025.03.15 |
| 마음으로 찾아 가는 寺(34회 차-3) (0) | 2024.12.16 |
| 마음으로 찾아 가는 寺(34회 차-2) (0) | 2024.12.14 |
| 마음으로 찾아 가는 寺(34회 차-1) (0) | 2024.12.1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