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찾아 가는 寺(47회 차-3)
2)에 이어서 적는다.
272.苻印寺-대구시 동구 팔공산로 967-28.
부인사에 관한 개창시기나 연혁은 잘 알려지지 않아 부인사의 창건연대와 위치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은 편이다. 7세기 초 창건으로 전해오고 있는 현 부인사에는 신라 선덕여왕 어진을 모시고 매년 음력 3월 보름에 신무동 주민과 사찰 측 및 경주 김 씨 종중에서 선덕여왕 숭모재를 지내는 것에서 부인사의 내력을 짐작할 만하다. 옛 절터가 지금은 포도밭으로 변해 있지만 현 사찰에서 200m 남쪽에 당간지주가 남아 있고 팔공산 순환도로 남쪽으로 금당좌가 연접하고 있어 옛날 번창기의 사역 범위를 보여주고 있다. 현 부인사는 6.25 동란 때 불탄 것을 1959년 중건한 것이다.
苻印寺의 苻印이 夫人으로 바꿨다.


玄音閣.

일화선원과 묘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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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전(석등) 산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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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사찰이라 옛 터가 군데군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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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


募緣文은 돈이나 물건(物件)을 기부(寄附)하여 선연을 맺게 하는 것이다.

불상의 손모양을 手印이라 하고 손모양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 한다.

273.把溪寺-대구시 동구 파계로 741.
804년 심지(心地)가 창건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1605년 중창되었다가 1695년 삼창하였다. 이 절에는 영조의 출생과 관계되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숙종의 부탁을 받은 현응은 농산과 함께 백일기도를 하였고 기도가 끝나는 날 농산이 숙빈 최씨의 꿈에 나타났다. 이렇게 태어난 아들이 후일의 영조였다는 것이다. 숙종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파계사 주변 40리 이내의 조세를 받아 쓰라고 하였으나, 현응은 이를 거절하고 선대의 위패를 모시기를 청하였다. 이는 지방 유림(儒林)의 행패를 막으려는 것이었다. 당시에도 사대부들에 의한 불교 탄압이 극심하였다.1979년 관음보살상을 개금(蓋金)[2]할 때 불상에서 나온 영조의 어의(御衣)는 이 설화의 신빙성을 더해 준다.
파계사도 팔공산에 있다.

원통전을 해체하여 보수하는 佛事가 진행 중이다.이것이 완공되어 더 상세히 보면 파계사의 진면목을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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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루-9갈래로 흩어진 물줄기를 모은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진동루는 파계사라는 이름만으로도 9줄기 물의 기를 진압하기에 부족하다고 하여 지어진 건물이다.

기영각-조선시대 왕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특별히 세워진 당우이다.

지장전과 극락전은 왼쪽 옆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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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진전과 범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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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체 日光東照.

英祖임금 나무.


옛길도 잘 보존되었고 이곳의 물맛이 좋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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