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찾아 가는 寺(50회 차-2)
1)에 이어서 적는다.
287.제2석굴암(신라의 석굴사원):대구시 군위군 부계면 남산 4길 24.
제2석굴암을 처음 조성한 사찰은 기록에 따르면 신라 소지왕 15년(493)에 극달화상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신라의 불교 공인(법흥왕) 전 핍박받던 시대에, 숨어서 오로지 불심으로만 수도하던 곳이었다고 한다.1962년 12월 국보 제109호로 지정되었다.
경주의 석굴암이 인공으로 석굴을 만들고 그 안에 부처를 모셨다면,이곳은 자연석굴을 최대한 활용해 사원으로 꾸민 것이 특징이다. 굴은 아파트 한 동 크기만 한 바위 아래쪽에 만들었는데, 지상 20 m 높이에 입구는 폭 4.2 5m, 길이 4.3 m이다. 동남향의 거대한 암벽에 조영된 석굴의 입구는 원형에 가깝고, 굴 안의 평면은 대체로 정사각형이다. 천장은 활의 등 모양이고 안쪽 벽에 붙여서 원각의 삼존(三尊)을 모셨는데 중앙에 본존불인 아미타불을 모시고 좌우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배치했다. 이 석굴과 불상을 700년 전후에 완성했다고 추정하지만, 그보다 이른 시기에 만들었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접근을 할 수 없기에 선명한 불상을 보기 어럽다.회원이 인터넷에서 다운 받은 화면이 그런대로 선명하다.

2026.2.3일.최대한 가까이서 찍은 것도 나쁘지 않네(鄭이 담은 사진)


我가 담은 사진.


주변의 여러 자연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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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像 외는 사찰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光明禪院,삼성각,범종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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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가 삼존석굴 석조비로자나불좌상.



288. 大芚寺:경북 칠곡군 가산면 가산로1길 272-59.
신라 고찰이라고 구전될 뿐 정확한 기록이 없어 창건 연대 및 이후의 사적을 알 수 없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신라 화랑들의 수행도량이었다고 한다.1840년 대홍수로 사역 전체가 물에 잠겨 수해를 입었으며, 이후 1992년에도 수해로 대웅전이 무너졌다.
1999년 다시 극락전을 건립해 사찰의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다. 경내는 극락전, 요사채, 산신각, 심검당 등 총 4개동으로 구성되어 있고 극락전을 중심으로 좌측 편에 전각과 요사가 모여 있다.
지금까지 사찰 순례를 하면서 오늘같이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비구니 4인이 운영 중이지만 水害의 아픔을 딛고 새롭게 잘 단장하였다.
比丘尼는 불교의 여성 수도자로,구족계인 348계를 받은 여자 승려를 뜻합니다.
수해 당시의 모습.

현재의 極樂殿과 尋劍堂.
심검당은 지혜의 칼을 찾는 집이라 하여 심검당이라고 한다.심검당의 검은 마지막 무명(無明)의 머리카락을 단절하여 부처의 혜명(慧明)을 증득(證得)하게 하는 검(劍)을 상징한다. 사찰 내에 적묵당(寂默堂)이 심검당과 함께 위치할 경우에는 적묵당은 선원으로, 심검당은 강원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곳은 순수한 수행처이므로 외인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다.


寮舍(寨)(요사채-절에서 승려들이 생활하는 공간.寨는 생냑해도 된다)와 佛子들이 공양하는 곳은 사찰 입구에 있다.

경내가 너무 좁아서 佛子들이 공양하는 곳은 사찰 입구에 있다.

산신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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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다듬어진 소나무가 잘 자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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