旅行(僧伽藍摩을 찾아서)

마음으로 찾아가는 寺-13회차(1)

yaoming 2023. 10. 6. 15:29

 

  마음으로찾아가는 寺-13회차(1)

 

 

1.일    자:13회차.2023.10.17(화) 맑음.

2.누구랑:배상호,이광원,我 心齋.

3.오늘 찾는 寺:주로 고성지방의 사찰이며 83~88 번째(사찰 명 앞의 숫자)    

4.일    정:9시 지하철 구서역~11시 20분 옥천사~12시 25분 계승사~13시 20분 문수암~14시 보현암

               ~14시 40분 점심~15시 10분 운흥사~16시 20분 藏義寺~16시 40분 부산으로~도로가 너무

               막혀서 돌아 돌아서 19시 구서역 도착.저녁 후 헤어짐.

5.기     타:13회차부터는 편집 방법을 조금 변경한다.여기(1)에서는 대표 사진 몇 장을 올리고 (2)에서

                나머지 사진을 올리도록 한다. 

 

83.玉泉寺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의 말사()로 670년(신라 문무왕 10)에 의상(:625~702)이 창건하였다. 대웅전 뒤에 맑은 물이 나오는 샘이 있어 옥천사라고 불리게 되었다. 중국 당()나라에 가서 화엄종의 시조 지엄()에게 화엄학을 배우고 돌아온 의상이 강론한 곳이다. 한국불교의 중흥을 위해 많은 활약을 한 승려 순호(:1902~1972)가 1927년 출가한 사찰이기도 하다.
1208년(고려 희종 4)에 진각국사() 혜심()이 중창했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40년(조선 인조 18)에 학명()과 의오()가 다시 중창하였다. 1883년(고종 20) 용성()이 중건하였고 1919년 이 절의 강사 영호()가 두 차례 중수하였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건물은 대웅전, 자방루(), 심검당(), 적묵당(), 명부전(경남 문화재자료 제146호), 금당, 팔상전, 나한전, 산신각, 독성각, 칠성각, 객실 등이 있다. 이런 것들은 그 동안 일곱 차례 중수되어 창건 당시의 것은 남아 있지 않지만 건물들이 모두 큼직하고 가람의 지붕이 마치 연꽃무늬처럼 배열되어 있어서 외형적인 규모로는 본사인 쌍계사를 능가한다.

 

 

2023.10.17일 탐방 시 사진.

 

 

84.文殊庵

바다를 담고 있는 암자

해발 549m의 무이산 정상 아래 자리 잡은 문수암은 신라 신문왕 8년(688년) 남해 금산을 향해 수행을 떠났던 의상대사가 문수보살의 현신을 만나고 창건했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암자다. 금산을 향해 가던 의상대사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다음날 만나는 걸인을 따라가라고 일러 주었는데 다음날 만난 걸인을 따라 오게 된 곳이 지금의 문수암 자리이고 걸인은 절벽 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법당 안에는 문수보살상이 모셔져 있으며 법당 뒤로는 문수보살이 상주한다고 전해지는 석벽문수단도 볼 수 있다. 문수암은 암자로서의 아름다움보다는 문수암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더욱 유명한데 한려수도의 풍광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많은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다. 무이산은 신라시대에 국선 화랑들이 정진하던 곳으로 정상에 서면 바다를 향해 서 있는 그림 같은 모습의 문수암을 만날 수 있다.

 

문수암은 그 자체보다 남해 바다를 보는 풍광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문수암에서 본 남해)

 

높은 곳에 위치하여 가까이서 찍기에는 한계가 있다.

 

 

 

85.普賢庵은 약사전을 별도로 볼 필요가 있다.

     -보현암에 대한 자료가 없어 인터넷에 검색하면 거의 약사전에 대한 설명이다.

약사전에서 본 보현암(300m 아래에 위치)

아래 글은 보현암의 부속 약사전을 설명한 것이다. 

보현암은 경남 고성군의 수태산에 있는 사찰로, 13m 높이로 우뚝 솟은 금동 약사여래 대불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산 중턱에 있어 경치가 좋고, 사찰 뒤쪽으로는 바다도 보인다. 특히 가을에는 산을 물들인 알록달록한 단풍이 커다란 불상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해동 제일 기도 도량'이라고 쓰여있는 일주문을 통과하면 사찰 건물이 보인다. 건물은 총 3층이며, 1층에는 불자들을 위한 염주 등을 판매하고 2층에는 법당이 있으며, 3층으로 올라가면 비로소 약사여래불 불상을 마주할 수 있다. 약사여래불은 중생의 아픈 몸과 마음을 치유하여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베풀어주는 불상으로, 가족과 주변인들의 건강을 빌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많다. 차로 3분 거리에 역사가 깊은 문수암이 있어 함께 여행하기에도 좋다.

 

불상이 바다를 향하지 않고 산을 보는 것도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일까?

 

86.藏義寺

경남 고성군 거류면 한복판에 우뚝 솟은 거류산(570m)중턱에 위치한 장의사는 신라 원효대사가 선덕여왕 1년 (서기 632년)에 창건하여 6.25사변의 병화를 입었으며 1891년 성담화상이 중창한 것을 비롯하여 1917년 효봉화상에 의하여 중건되고 그후 신도들에 의해 보광전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며 사찰의 뒤로는 기암괴석이 웅장하게 치솟아 울창한 수목과 더불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의 말사이다.

삼국통일 전에 전국을 순방하며 수도하던 원효()가 창건하였다. 그러나 근대 이전까지의 중창 및 중건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고 있다. 다만, 임진왜란 때 화재로 전소되었던 것을 1891년(고종 28)에 성담()이 중창하였고, 1917년에는 효봉()이 중건하였으며, 1960년대 초기에 신도들의 도움으로 보광전(殿)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광전을 비롯하여 산신각·요사채 등이 있으며, 보광전에는 주존불로 2011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석조관음반가상()을 봉안하였다.

 

2023.10.17일

 

87.桂承寺

태고의 신비로움과 암벽의 경이한 모습을 품고 있는 공룡의 나라 고성 금태산 기슭에 자리한 계승사는 시간의 흔적만큼이나 계승사 바위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1억 년 전 이곳이 공룡들의 땅이라고 증명하듯 초대형 공룡발자국을 남겨두었다. 또 거대 암반 위에는 파도가 밀려가면서 모래사장에 만들어내듯 한 물결무늬 화석이 그저 신비롭기만 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계승사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기암괴석은 거북등 모양을 하고 있는가 하면, 태고의 빗방울이 남긴 자국까지, 그야말로 자연이 스스로 만들어낸 예술품이 따로 없다. 용두봉에서 발원하여 기암괴석과 절벽 사이로 흐르고 있는 석간수는 그 옛날 매일 부처님의 공양미로 올릴 석 되 두 홉의 공양미가 쏟아졌다는 전설이 전해질 정도로 맑고 청정하다.
금태산 계승사에서 고려 말 이성계가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삼남도를 내려왔다가 이 절에서 수행하며 조선 창건의 꿈을 키웠다고도 한다. 그리하여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자신의 수행한 산의 이름에 ‘금’자를 붙여 하명했는데, 바로 고성의 금태산(金太山)과 남해의 금산(錦山)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태고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큰 바위를 머리에 이고 조용히 역사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신라 천년 고찰 계승사는 천연 자연림이 그대로 보존되어 그 호젓함을 더해주고 있다. 번잡한 시가지를 벗어나 조용한 여유를 찾고 싶다면 바위 위 계승사 법당에서 들려오는 스님의 독경소리와 풍경소리가 좋은 벗이 되어줄 것이다.

 

 

 

 88.雲興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의 말사이다. 676년(신라 문무왕 16)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 일설에는 1350년(고려 충정왕 2)에 창건되었다고도 한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유정(惟政)이 6천 명의 승병을 거느리고 이곳에서 왜군과 싸웠다. 또 이 때 이순신이 작전을 세우기 위해 이곳을 세 번이나 방문했다고 한다. 왜군이 불을 질러 모두 불에 탄 것을 1651년(효종 2) 법성(法性)이 중창하였다.

 

들어 올 때는 일주문.나갈 때는 불이문.

 

 

 

기타 사진은 2)에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