旅行(僧伽藍摩을 찾아서)

마음으로 찾아 가는 寺(48회 차-2)

yaoming 2026. 1. 2. 18:28

 

          마음으로 찾아 가는 寺(48회 차-2)   

1)에 이어 오늘의 일정을 적는다.


276.法藏寺:대구시 남구 고산3길 96-4.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며, 창건 연대 및 중창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았지만 구전 및 현존하는 유물로 보아 신 말기에 창건된 사찰로 전해지고 있다.신라 말의 한 왕이 대를 이을 왕자가 없던 차에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서쪽으로 수백 리 되는 곳에 산 좋고 물 맑은 곳이 있으니 그 곳에 절을 짓고 정성을 다하면 소원을 이루리라"고 하였다.이에 왕명을 받고 신하들이 보름 만에 고산골에 이르러 그 곳에 절을 짓고 고산사(高山寺)라 하였고 백일기도 후 왕비는 왕자를 낳고 이듬해에도 두 번째 왕자를 낳아 이를 기뻐한 왕은 고산사에 삼층석탑을 세우도록 하였다고 한다.

기대를 하고 왔는데,예상 외로 규모가 초라했다.

 



이 글귀는 젊었을 때 많이 사용한 것이다.



인터넷에서 안일사에 가려면 神光寺에 주차하면 될 것으로 예상했는데,직접 와서 보니 아니었다.
마침 외출 나온 사람의 안내를 받아 점심을 한 식당에 주차를 하고 약 700m의 된비알을 30분 이상 올라 안일사를 찾는다.

이곳 일대는 안지랭이라 안지랭이를 검색한다.
 
안지랭이(안지랑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번째로는 공산 전투에서 패한 왕건이 앞산까지 도망쳐 와서 편안하게 지냈다고 하여 안지랑이 되었다. 두번째로는 마침 견훤도 왕건을 쫓아 이곳 근처까지 들어왔다. 왕지렁이의 후손인 견훤이 왔다하여 왕지렁이, 안지랑이, 안지랑이 됐다는 것이다. 이곳이 왕인 왕건이 들어왔다하여 왕지랑, 안지랑이 되었다는 것과 앉은뱅이가 일어서는 곳이라서 안지랑이, 앞산 골짜기의 물을 맞으며 놀기가 좋다하여 안좌령, 안지랑, 이 곳이 아지랑이가 가득피어나 안지랑이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공산전투로 인해 이곳의 지명이 결정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오르는 입구의 풍경.


해발 325m까지 상수도가 설치되었다.



277.安逸寺:대구시 남구 앞산순환로 440.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末寺)로 통일신라의 전통 사찰이다.
927년(경순왕1년) 영조대사(靈照大師)가 창건한 사찰로,근대까지의 역사는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영조대사는 278번.臨休寺도 창건하였다. 
안일사의 이름 유래는 고려 태조 왕건과 관련이 있다. 왕건은 후백제의 견훤에게 패배한 후, 충복인 신숭겸의 지략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는 후백제군의 추격을 피하는 과정에서 그는 앞산의 굴에 숨어들었고, 안일사에서 500m 거리에 위치한 왕굴은 왕건이 3개월 동안 편안히 머물렀던 곳이다.이로 인해 사찰의 이름이 安逸寺로 지어졌다고 전해진다.


나는 입구까지 25분 걸었다.앞산의 높이가 658m이고 여기가 325m이다.정상까지는 꽤 멀다.

 



오늘 일정 중에 사찰다운 사찰을 찾았다.



산신각도  아담하게 지었네.



관음전 앞에 놓인 차는 굉장한 비탈인데 어찌 여기까지.



기타 여러가지를 찍어 본다.대웅전 뒤 처마와 바위도 담아 본다.


 
바위에 뭔가 새겨져 있는 것 같은데,확실하지가 않다.



이 손수건은 하나 사고 싶었는데,담당자가 없네.




  278.臨休寺:대구시 남구 앞산순환로 12-25.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末寺)이다. 921년(신라 경명왕 5)에 영조대사(靈照大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는 전통 사찰이다.임휴사는 창건 이후 조선 중기까지의 역사는 전하는 자료가 없어 자세히 알 수 없다.그 뒤 1811년(순조 11)에 무주선사(無住禪師)가 중창하였으며,1930년에는 포산화상(苞山和尙)이 다시 중창하였다.



般若堂과 삼성각.堂(집 당)을 사용한 게 특이하다.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하여 뒷산과 앞산의 경치는 좋고 옹벽을 城廓처럼 쌓은 것도 특이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