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찾아 가는 寺(20회 차-2)
1)에 이어서 적는다.
134.護國寺: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71
고려 말기, 빈번한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진주성(사적 118)을 수축하고, 승병(僧兵)을 양성하기 위해 성 안 서장대와 창렬사 사이 골짜기에 세운 사찰로, 전통 사찰 제70호로 지정되었다.임진왜란 때는 승군(僧軍)의 본거지였고, 1593년(선조 26) 제2차 진주성 싸움에서 수많은 승병들이 마지막까지 분투하다가 성이 함락되면서 함께 전사하였다.
창건 당시의 이름은 내성사(內城寺)였으나, 전란 후 성과 함께 전사한 승병들의 공적을 찬양하고 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숙종이 호국사란 이름을 내리고 다시 세웠다.
진주성 내에 있는 사찰이다
진주성 西門으로 오르면 있다
호국나무와 호국나무가 있던 그루터기
135.蓮華寺:경상남도 진주시 향교로42번길 13
전통사찰 제92호로 지정되어 있다. 1923년에 세운 사찰로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북동(玉峰北洞) 449에 있다. 본래 경상남도 고성군 개천면 북평리 연화산(蓮花山)에 있는 옥천사(玉泉寺)의 포교당이었으나 옥천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연화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
전통사찰이라 들리긴 했는데,의미를 둘 정도는 아니다
시내 도로 변에 위치
136.義谷寺:경상남도 진주시 의곡길 72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로, 비봉산(飛鳳山, 높이 138m)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665년(신라 문무왕 5) 해동진언종(海東眞言宗)의 창시자인 혜통(惠通)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808년(신라 애장왕 9) 원측선사가 중창, 1194년(고려 명종 24) 월명선사가 삼창하였다고 전해지며 사명도 월명사, 숭의사 등으로 바뀌었다.
일주문 바로 뒤에 사찰로 가는 대흥루와 범종
千佛殿과 오랜만에 불상을 담는다
飛鳳山은 시내에 소재하여 접근이 용이하고, 해발 138.5m의 자연 경관을 갖추고 있으며, 강이식 장군의 신위를 모셔둔 봉산사가 있고 비봉산의 봄은 진주 8경 중 하나이다.
등산로가 개발되어 진주 시민의 휴식 공간가지 활용되고 있으며, 진주시의 진산 비봉산 남쪽에 진주시가지가 발달 하였고, 비봉산 서쪽에 가마못이 있었으며 산을 중심으로 비봉 공원이 형성되어 있고 산 동쪽에 의곡사, 연화사 등이 있으며 산 서쪽 기슭에는 비봉루가 있다.
137.叢林禪院:경상남도 진주시 망진산길 71
진주 8경의 하나인 망진산 자락에 자리한 총림선원은 사찰 주위에 300m 남짓한 토성지가 남아 있으며, 옛날 봉수를 올렸던 봉수대 아래 진주시를 내려다보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총림선원은 조선 후기인 1890년대에 창건이 이루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으나 정확한 창건 연대와 창건주를 알 수 없다. 진주의 부잣집 며느리가 아들을 얻기 위해 현재의 총림선원 아래에 있는 미륵불에서 기도를 하여 아들을 얻게 되었고, 그 후에 보살이 지금의 총림선원을 세웠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이 사찰도 전통사찰이라 탐방을 했는데 별다른 의미가 없다
이 사찰에도 천불전이 있네
望晉(鎭)山(172.4m)은 망경동의 뒷마루에 있기 때문에 보통 망경산이라고도 부르는데 그 둘레에 약 300m의 토성지가 남아 있다. 성터 안에 망경산 봉수대지(烽燧臺址)가 자리하고 있다.
138.凝石寺:경남 진주시 집현면 응석로 435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로, 집현산(集賢山, 높이 572m) 동남쪽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554년(신라 진흥왕 15)에 연기(緣起)조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에 지공(指空)·나옹(懶翁)·무학(無學)스님 등이 머물렀다 하며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때의 승병장으로 유명한 사명당 유정(惟政 1544~1610)과 진묵 일옥(一玉 1562~1633)이 머물며 화엄도량으로서의 명성을 떨쳤다.
이런 분위기가 있어야 사찰을 탐방하는 맛이 난다
비교적 넓은 터에 깔끔하다
集賢山(572.2m)은 진주지역 산악인들이 한나절 산행지로 자주 즐겨 찾는 산이다. 역사적으로 동학혁명과 임진왜란의 아픔을 많이 간직한 산이기도 하다.
집현산 자락 청고개의 임진왜란 상황을 보면 임진년 10월 9일 김준민장군이 이끄는 500여 군사가 진주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진군하는 길에 이곳에 이르렀다. 장사진을 이룬 군사가 이동하다보니 뜻밖에 청현, 오동, 정태, 단성 일대에 왜적이 쫙 깔려서 마을마다 분탕질을 하는데 불을 질러서 연기가 하늘에 닿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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