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찾아 가는 寺(26회 차-1)
1.일 자:26회 차.2024.6.18(화) 매우 더움
2.누구랑:배상호,정종화,我 心齋
3.오늘 찾은 寺:함양군에 있는 전통사찰 중 4곳,산청군 겁외사
4.일 정:
- 08시 30분.구서역 출발.11시~11시 35분 용추사,용추폭포을 보고
- 화림동 계곡을 따라 오르면서 농월정~동호정~군자정~거연정의 아름다운 정자를 본다
- 12시 50분 영각사를 보고 백전면으로 가기 전 서상면에서 콩국수로 점심을 한다
- 14시 50분 해발 900m지점에 있는 상연대 도착.길이 좁아 고생했다
- 15시 40분 보림사.오는 길에 산청군 단성면 성철 스님 생가가 있는 怯外寺에 들림
- 18시 40분 도착 후 저녁.오늘은 이동 거리가 485km나 되었다.
167.龍湫寺: 경남 함양군 안의면 용추계곡로 623(상원리 962)
용추사는 신라 소지왕 9년(487)에 각연대사가 창건한 옛 장수사와 4대 부속 암자 중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사찰로서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6.25전쟁 때 소실되어, 1953년 안의면 당본리에 있는 봉황대에 별원을 차려 놓았다가, 옛터의 복원을 추진하여 1959년 재건하였다. 주변 경관이 수려한 자연 속에 있다. 옛 장수사의 흔적을 간직한 보물(2023.11.02 지정)인 『덕유산장수사 일주문』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가 보관되어 있으며, 과거 장수사에서 설파상언 대사가 전국의 승려들을 모아놓고 화엄경을 강의했던 유명한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용추사 앞쪽에는 용추폭포가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용추사 뒤편 용추계곡 상류에는 기백산군립공원과 용추자연휴양림이 있고 서북쪽 산 정상에는 정유재란 때 왜구와의 혈전이 벌어졌던 황석산성이 있다.
옛 장수사 일주문을 먼저 본다
용추사 앞에 있는 용추폭포(더 자세한 내용은 "26회 차-2"에서 보세요)
용추사
다른 사찰과는 달리 梵鐘閣이 아닌 圓音閣이라고 했네
불교대사전에 圓音 이란?
(1) 일원상의 진리, 곧 원만구족한 진리 그 자체의 소리, 또는 그 진리를 전해주는 말씀.
(2) 원만구족한 부처님의 말씀.
(3) 모난 데가 없이 원만하고 화합하는 말씀. 다른 사람을 제도해주고 선업의 길로 이끌어주는 말씀.
용추사 입구에 있는 아래 글이 의미가 있다
三日修心千載寶(삼일수심천재보)는 3일 동안의 修身은 수레 천대로 나르는 보석과 같고
百年貪物一朝塵(백년탐물일조진)은 백년동안 끌어 모았던 재물은 하루 아침에 먼지와 같도다
168.靈覺寺: 경남 함양군 서상면 덕유월성로 567
영각사(靈覺寺)는 877년(신라 헌강왕 3)에 심광대사(深光大師)가 창건한 사찰로 전해 온다. 조선 시대에 폐사된 것을 1449년(세종 31) 승려 원경(圓瓊)이 중창한 후 몇 차례 중수를 거쳤다. 1834년(순조 34)에 불의의 화재가 발생하여 화엄전을 제외하고 전부 소실되었으며, 1886년(고종 23) 승려 강용월(姜龍月)이 중수하였다. 1950년 6·25전쟁 당시 산신각과 구광루만 남기고 다시 소실되었다. 영각사는 19개 동의 건물과 비로암(毘盧庵), 봉황대(鳳凰臺) 등 13개의 소속 암자가 있을 정도로 대규모였지만 6·25전쟁 때 소실되어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때 그동안 소장되어 온 화엄경판(華嚴經板) 81권 3,284판과 범망경(梵網經) 2권 68판 등이 모두 소실되었다. 이후 1959년 화엄전(華嚴殿), 1966년 극락전(極樂殿)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73년 11월 3일 전통사찰 제55호로 등록되었다.
주소만 함양군이지 덕유산 국립공원에 속하여 이동 거리만 왕복 60km가 넘는다
와서 보니 2008.1.1일 옛 민정당 연수원(현 경남 덕유학생교육원)과 영각사를 거쳐 거쳐 남덕유에서 향적봉까지 2박 3일
등산한 기억이 난다
수입된 금계국이 생태계을 교란하고 있다.사찰 언덕에까지 토종 꽃을 밀어 낸다
경남 덕유 학생연수원에 잠시 들려 본 연암 박지원 시계
169.上蓮臺: 경남 함양군 백전면 백운산길 3-291
해발 900m에 위치하여 조망은 좋다.오르는 길이 좁아 웬만한 차나 운전으로는 쉽게 갈 생각하지 말라
원통보전 앞이 가파른 절벽이라 정면 사진을 찍을 수 없고,깔끔이 정리한 것을 보니 스님은 부지런하네.
우측은 물건을 올리는 도르네
백운산 정상까지는 1.6km인 등산로이다
출타했다 돌아 오시는 스님을 사찰 바로 아래 이 주차장에서 만났기에 다행.중간에서 만났다면 고생했을 것이다
170.寶林寺: 경남 함양군 상림3길 32
보림사는 용성선사(龍城禪師)[1864~1940]의 뜻에 따라 1912년 백송사 주지 동운화상(東雲和尙)이 함양읍에 민가를 구하여 포교당으로 창건하였다. 처음 세워졌을 때의 절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지금의 보림사(寶林寺)라는 이름은 1970년부터 사용되었다.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海印寺)의 말사(末寺)이다. 1929년에는 영원사(靈源寺), 법화사, 용추사, 벽송사, 남원의 실상사 등과 함께 포교 사업의 일환으로 유치원을 운영하기도 하였다.
함양읍 주택가에 위치하여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다
171.劫外寺: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 210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성철스님의 대표적인 법문은 알듯 말듯 일반인들에게 다가온다. 1912년 산청군 묵상마을에서 태어난 스님은 25세인 1936년 해인사에서 승려의 계를 받은 이후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참선과 묵상으로 이어진 스님의 삶은 해방 이후 왜색으로 물들었던 불교와 사찰의 모습을 선풍운동으로 바로잡았고, 조계종의 종정으로 돈오돈수 사상을 내세워 불교계 논쟁의 중심이 되었다. 한국불교와 세상의 변화를 이끌었던 개혁가였고 사상가였으며 해방 이후 혼란스러운 한국사회의 등대와도 같은 존재였다.
스님의 탄생지인 묵상마을에 위치한 겁외사는 스님을 추모하고 뜻을 기리는 사찰이다. 수없이 손질하여 누더기를 보는 듯한 승복 두루마기나 이면지를 모아 만든 메모장은 스님의 검소한 생활을 느끼게 하고 속명인 ‘이영주’라는 이름으로 묶인 젊은 날의 도서목록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하였던 한 인간의 뜨거운 젊은 시절을 상상하게 한다.
사찰은 너무 잘 조성되었다.귀한 나무 등도 있다.다른 사찰에 없는 것을 중심으로 올린다
생가인 惠根門
안채인 栗隱故居와 누더기 옷 등
사랑채인 栗隱齋
성철스님 出家頌
彌天大業紅爐雪(미천대업홍로설)
跨海雄基赫日露(과해웅기혁일로)
誰人甘死片時夢(수인감사편시몽)
超然獨步萬古眞(초연독보만고진)
하늘에 넘치는 큰 일들은 붉은 화롯불에 한 점 눈송이요,
바다를 덮는 큰 기틀이라도 밝은 햇볕에 한 방울 이슬일세.
그 누구 잠깐의 꿈속 세상에 꿈을 꾸며 살다 죽어가랴.
만고의 진리를 향해 모든 것 다 버리고 초연히 나 홀로 걸어가노라
성철스님 悟道頌(깨달음의 경계를 읊은 偈頌)
黃河西流崑崙頂 日月無光大地沈
遽然一笑回首立 靑山依舊白雲中
황하수 곤륜산 정상으로 거꾸로 오르니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땅은 꺼지는도다
문득 한 번 웃고 머리를 돌려 서니
청산은 예대로 흰구름 속에 섰네
사리탑은 특이한 형태로 해인사에 있단다(사진을 찍음)
경내애 특이한 백송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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