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찾아 가는 寺(27회 차-2)
★27회 차-1의 산청군에 이어 함양군입니다.
178.碧松寺: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광점길 27-177.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절 뒤쪽에 현존하는 석탑을 통하여 대략 고려 말이나 조선 초에 창건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후 1520년에 벽송(碧松) 지엄(智儼)[1464~1534]이 이곳을 중창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일정 시간 동안 폐사 상태로 있은 것으로 추측된다. 1704년부터 환성(喚惺) 지안(志安)[1664~1729]이 중수하면서 부속 암자가 10여 곳이 될 정도로 번성하였다. 그 후로도 1850년부터 서룡(瑞龍) 상민(詳玟)[1814~1890]이 불사를 계승하면서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 속에서도 선불교의 맹맥을 유지하였다.
6·25전쟁 때 지리산(智異山)[높이 1,915.4m]을 근거지로 활동하던 빨치산이 잠시 벽송사를 야전병원으로 사용하면서 국군에 의하여 방화되어 완전히 불에 탔다. 비구 구한(久閒)이 1960년부터 절의 위치를 50m쯤 내려서 현재 위치에 중건하였다.
현 벽송사(왼쪽 사진)는 그 위에 있었다(당시에 있었던 부도-오른 쪽)
옛 터에 있었던 삼층석탑
벽송사는 이 소나무로 인한 이름일까?
목장승.
179.瑞庵精寺: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광점길 27-79
한국불교 禪宗의 법승을 계승한 벽송 지엄대사가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고찰인 벽송사로부터 서쪽으로 600여m 지점에 위치하여 천연의 암석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사찰이다.
한국전란으로 인하여 황폐해진 벽송사를 다시 재건한 원응스님이 이 도량을 찾아 장구한 발원을 세우고 지리산의 장엄한 산세를 배경으로 수려한 자연자원과 조화롭게 자연암반에 무수한 불상을 조각하고 불교의 이상세계를 상징하는 극락세계를 그린 조각법당을 10여년간에 걸쳐 완성하여 그 화려함과 웅장함이 과히 장관을 이루고 있다.
사찰 입구에 불교진리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대방광문이 있고 바위에 조각된 사천 왕상을 지나 도량안으로 들어서면 아미타여래가 주불이 되어 극락세계를 형상화한 석굴법당이 있고, 도량 위편에는 무수한 불보살이 상주하는 광명운대, 그리고 스님들의 수행장소인 사자굴등이 있다.
이는 모두 자연의 암반에다 굴을 파고 조각을 하므로써 불교예술의 극치를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건축학적으로도 특이한 기법을 보이고 있어 학계에서도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우리나라 계곡중 아름답고 웅장하기로 유명하여 3대 계곡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는 칠선계곡의 초입에 위치하고 있어, 연중 많은 신도 및 문화 탐방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일주문에 해당하는 거대한 돌 기둥이 있다.
들어 가면서 보는 돌기둥에 새겨진 그 뜻은
오른 쪽:白千江河萬溪流(백천강하만계류- 수많은 강물 만 갈래 시냇물)
왼쪽:同歸大海一味水(동귀대해일미수- 바다에 가니 한 물맛이로다)
나오면서 보는 글
오른 쪽:森羅萬象各別色(삼라만상각별색--삼라만상 온갖 모습이여 )
왼 쪽:還鄕元來同根身(환향원래동근신-고향에 돌아오니 본래 한 뿌리이니.
사천왕상.
대방광문을 통과하여 들어 간다.
대웅전
연못.
석굴법당.
이곳은 자연석을 깍고 다듬고 정리한 흔적이 곳곳에 있다.
180.金臺庵: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천왕봉로 1035-33
금대암(金臺庵)은 656년(신라 무열왕 3) 행우(行宇)가 창건하였다. 이후 도선(道詵)[827~898]이 나한전을 지어 중창한 뒤 나한도량으로 명성을 떨쳤다. 고려 때는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1158~1210]의 제자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1178~1234]이 금대암에서 주야로 게송(偈頌)[부처의 공덕이나 가르침을 찬탄하는 노래]을 읊으며 정진하였다. 1430년(세종 12)에 천태종 판사도대선사(判事都大禪師) 행호(行乎)가 근처 안국사(安國寺)와 함께 중창하여 금대사(金臺寺)라고 하였다. 1489년(성종 20) 김일손(金馹孫)[1464~1498]이 지리산을 유람하고 남긴 『속두류록(續頭流錄)』에는 당시 금대암에 20여 명의 승려가 경을 외우며 수행하였다고 전한다. 서산대사(西山大師) 휴정(休靜)[1520~1604]도 금대암에서 수도 정진한 것으로 전하여진다.
1598년 정유재란 때 전란의 피해를 보았다. 그후 중창되었다가 6·25전쟁으로 다시 소실된 것을 금대암복구기성회가 조직되어 1960년에 중건하였다. 1985년에 법당을 새로 지으면서 옛 법당을 해체하여 현재 자리로 옮기고 금대선원(金臺禪院)으로 불렀다.
해발 660m나 되는 곳이니 조망이 정말 좋고,전나무 또한 자랑스럽다.
입구에 있는 碑.
181.安國寺: 경남 함양군 마천면 천왕봉로 1035-337
안국사는 태종 3년(1403)에 행호조사가 국태민안을 기원하기 위하여 창건하였다. 1947년 소실되었다가 1965년에 중건되었으며 안국사 부도가 특이하다. 안국사를 지나 비탈길을 계속 올라가면 산 정상의 구부증선 아래에 금대암이 있는데 안국사와 같은 시대 같은 사람이 창건한 안국사의 암자였지만 지금은 안국사보다 휠씬 크고 웅장한 사찰이다. 1950년 소실되고 1960년 중건했다. 탁영 김일손의 두류산 기행문에 일두 정여창과 함께 지리산에 가면서 들렀던 곳이며 뇌계 유호인의 시문에 “금대야 잘 있느냐 송하문이 옛같구나 송풍에 맑은 꿈 깨어 문득 잠꼬대를 하는구나”라고 하는 사실로 볼 때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들렀던 사찰로 사료된다. 사찰 내에는 은광대화상부도(도유형문화재 제337호), 안국사 부도(도유형문화재 제35호)가 있다.
특이한 부도.
182.靈源寺: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마천삼정로 544-659.
해발 910m나 되고 길이 험하고 그 험한 산길이 5km나 되니 찾아가기가 너무 어럽다.
조계종 제12교구 본사 해인사의 말사이다. 해발 920미터의 고지대인 지리산 중턱 울창한 숲 속에 위치해 있다. 이 지역의 지리산 줄기는 일명 삼정산으로도 불린다.
신라 시대에 영원대사가 창건하여 영원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영원이 지리산에 토굴을 파고 8년을 계속 참선 수도를 하였으나 깨달음을 얻지 못해 산길을 내려오던 중, 물 없는 산 속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던 노인의 말을 듣고 다시 정진해 깨우침을 얻게 되어 그 자리에 영원사를 지었다는 전설이다.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비롯해 청매, 포광, 설파 등 선불교 고승들이 거처간 수도 도량이다.정산을 배경으로 앞쪽으로는 벽소령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경치가 수려하다. 한때는 선방이 100칸이 넘을 정도로 내지리에서 가장 큰 사찰이었다고 하나,여순 14연대 반란 사건 때 반란군의 아지트가 된 뒤 한국 전쟁 때는 지리산이 유격대와 대한민국 국군 토벌대 간의 격전지가 되면서 완전히 소실되었다. 지금의 건물은 1973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최근에 불사한 언덕.약초 심으면 좋겠는데.
물맛이 좋구나.
탐방 중에 예쁜 꽃들을 많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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