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찾아가는 寺(18회 차)
1.일 자:18회 차.2024.3.1(화)
2.누구랑:배상호,정종화.我(心齋)
3.오늘 찾는 寺:전통 사찰에 등록 된 사천군 2곳,남해군 6곳 중 4곳을 탐방한다(123~126)
4.기타 볼거리:독일마을,다랭이마을 등 볼거리가 많다.이의 기록은 모두 탐방한 후에 올릴 계획이다.
5.일 정:8시 지하철 구서역~9시 40분 사천 백천사 도착~10시 50분 남해 운대암~남해 방조어부림,독일마을,
편백자연휴양림을 거쳐~13시 미조항에서 점심~상주은모래비치을 거쳐~금산 보리암으로 가는 중간에서
예상하지 못한 차량 지체(관광객이 많음)로 다음을 기약하고 용문사로 간다(14시)~15시 35분 사천면 다솔사
도착,탐방 후 16시 10분 부산으로~18시 30분부터 저녁을 먹고 각자 집으로,,,,,
123.百泉寺: 경남 사천시 백천길 326-2
팔만구암자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와룡산 기슭에 있다. 신라 문무왕(663년) 때 의선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임진왜란 때에는 승군(僧軍)의 주둔지였다고 한다. 옛 모습은 전혀 남아 있지 않으며 현재의 모습은 현대에 와서 새로 만들어진 것이다. 약사와불전에 있는 길이 13m·높이 4m의 목조와불로 유명한데, 와불의 몸속에 작은 법당이 있다. 대웅전·약사와불전·산령각·용왕각·요사 등으로 구성되며, 절의 외부에는 약사여래좌불이 있다. 납골당 시설인 극락전 추모관을 비롯해 오방여래불 소원기원탑·금종·포대화상·산신할미상 등 각종 조형물이 있다.
*지금까지의 사찰 탐방 중 느낀 점은 사찰이 너무 세속화 된 것이다.규모도 상당하다.나는 이런 분위기가 싫다
대웅전
대웅전보다는 만덕전이 더 웅장하다
臥佛의 크기 또한 굉장하고 이것으로 유명세를 탄 것 같다
납골당 등
곳곳에 불전함이 있다.돈 모으는 곳인가?
백천사가 위치한 곳은 臥龍山이다.와룡산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중심부에 있는 사천의 상징인 와룡산은 해발 798m로 거대한 용 한 마리가 누워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하여 와룡산이라고 한다. 남녘 해안가에 자리잡은 이 산은 높이에 비해 산세가 웅장하다. 암릉으로 이루어진 새섬바위와 상사바위, 기차바위등의 빼어난 암벽과 부드러운 억새 능선길,시원한 소나무 숲길을 품고 있어 여름 산행지로 적격이다.
정상인 민재봉을 비롯한 새섬바위 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크고 작은 섬들과 푸른바다 조망이 일품이다. 와룡사, 백천사, 백룡사등 암자와 절이 있다.
124.雲臺庵:경남 남해군 창선면 창선로 153번길 240
고려 초 망경암이라 불리며 대방산 중턱에 창건된 사찰이다. 아침에 기도하면 저녁에 영험을 보는 제일의 기도도량으로 번창하여 오던 중 조선시대에 운대암이라 개칭되었다. 상좌중이 낙상 사망하여 한 동안 절이 비었다가 임진왜란 후에 세월선사가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법정화상께서 원력을 세우고 불심이 깊은 신도를 얻고자 일 년의 공사기간을 거쳐 대작불사를 하였으며 법당(무량수전)과 산신각을 1990년 12월에 완공하였다.
사찰 입구의 자연석에 文殊菩薩眞性無嗔偈(문수보살진성무진게)가 양각되어 있다.
성안내는 그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이 티가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
定心寮,修心寮가 눈에 확 들어온다.모두 불교 용어다.료(寮는 "집 료"로 뜻 작은 집,숙소이다)
범종과 사찰 바로 앞에 있는 대방산 자락 적곡저수지
운대암에는 아미타후불탱 등 문화재가 다수 있다
무량수전 앞 언덕에 "각시 원추리"가 피었네
운대암은 대방산에 위치한다.臺芳山(468m)은?
창선섬에서 가장 높은 산, 정상에는 향토유적인 대방산 봉수대가 있고, 동쪽에는 남해의 넓은 바다가 펼쳐지며 서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망운산이 보인다. 남쪽에는 금산이, 북쪽으로는 사천 각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아래로 펼쳐진 앵강만은 남해안의 황금어장이다. 섬 속의 섬 창선의 아름다움을 가장 가까이서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125.龍門寺: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문사길 166-11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의 말사이다. 802년(신라 애장왕 3) 창건되었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때 이 절 승려들이 승병으로 참여하여 왜군과 싸웠는데, 이 때 절이 불에 타 없어졌으며 1661년(현종 2) 학진(學進)이 인근 보광사(普光寺) 건물을 옮겨와 중창하였다. 보광사는 원효가 세운 사찰이었으나 이곳으로 옮길 때에는 폐사 직전의 상태였다고 한다. 용연(龍淵) 위쪽에 터를 잡았다고 해서 용문사라고 이름을 붙였다. 임진왜란 이후 호국도량으로 널리 알려져 숙종(재위:1674∼1720) 때 나라를 지키는 절이라며 수국사(守國寺)로 지정하였다. 또 이 때 왕실의 축원당(祝願堂)으로 삼았다. 1703년(숙종 29)과 1735년(영조 11), 1819년(순조 19), 1857년(철종 8) 각각 중수하였으며, 1900년 호은당이 복원 중흥하였다.
오래된 사찰이라 여러 시설이 있다
이런 대형 불상도 새로 조성했다
용문사에서 보는 菩提庵이 있는 錦山
사찰 뒤 호구산 자락에 茶나무가 자생한다
호구산이 흐르는 계곡물도 겨울인데도 상당하다
용문사는 호구산 자락에 위치한다
虎丘山(619m) 호구산은 지형도에는 산 이름이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송등산, 괴음산 등 산군을 엮어 호구산으로 대표되는 '호구산군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남해읍 이동면에 솟은 호구산은 남해의 산꾼들이 외부에 알리기를 꺼릴 만큼 아름다운 산으로 소나무, 벚나무, 단풍나무 등 수림이 울창하다. 신라 애장왕 때 개창한 남해에서 가장 오래된 절인 용문사에는 대웅전을 비롯해 석불좌상, 천왕각, 명부전, 촌은선생의 집책판, 삼혈포와 수국사 금패등 많은 문화재가 있으며 부속암자로 백련암, 염불암을 품고 있다. |
126.多率寺:경남 사천시 곤명면 다솔사길 417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의 말사이다. 511년(지증왕 12)에 조사(祖師) 연기(緣起)가 영악사(靈嶽寺)라 하여 처음 세웠고, 636년(선덕여왕 5) 새로 건물 2동을 지은 뒤 다솔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676년(문무왕 16) 대사 의상(義湘)에 의해 영봉사(靈鳳寺)로 바뀐 뒤 신라 말기에 국사 도선(道詵)이 다시 손질하여 고쳐 짓고 다솔사라 하였다. 1326년(충숙왕 13) 나옹(懶翁)이 중수한 뒤에도 여러 차례 수리하였으며, 임진왜란 당시 전화로 불탔으나 숙종 때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현재의 건물은 1914년의 화재로 타버린 것을 이듬해 다시 세운 것이다.
寂滅寶宮이란?
절에서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 적멸보궁(寂滅寶宮)이란, 직역하면 '온갖 번뇌과 망상이 적멸한 보배로운 궁전'이라는 뜻이다. 이는 석가모니가 적멸의 낙을 누리며 안식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석가모니가 화엄경을 설한 중인도 마가다국 가야성의 남쪽 보리수 아래의 적멸도량(寂滅道場)에서 유래하였다.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는 보통 사리탑이나 계단(戒壇)안에 봉안되어 있는데 이 경우 석가모니의 진신이 상주하고 있는 셈이므로 따로 불상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 앞에 있는 건물인 적멸보궁에는 불단만 있는 것이 특징이다. 불단 너머로 사리탑이 보이도록 창문을 낸 경우도 있다.
*5대 적멸보궁
*기타 적멸보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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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다솔사 적멸보궁
다솔사에 있는 적멸보궁
벽(창문) 뒤로 보이는 적멸보궁과 실물
해서와 행서가 섞인 간판이 특이하다
종무소 기능을 하는 당우에 죽로지실, 추사의 현판을 모각했다.
다산의 차방이 다산초당이라면 추사의 다실은 죽로지실(竹爐止室)이다.
세월의 깊이가 느켜진다
옛 화장실이다.오래 전에 왔을 때 사용한 경험이 있다.지금은 새로 지은 화장실을 사용한다
다솔사는 茶로 유명하다.뒤 언덕은 온통 차밭이다
다솔사가 위치한 鳳鳴山은?
지도에는 "이명산", 현지 다솔사의 입구 입석에는 "봉명산"이라 되여 있고 ,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정상에 오르면 남으로 금오산, 다도해, 서쪽으로 백운산, 서북으로 지리능선, 웅석봉 등이 시야에 들어온다.해발 57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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