旅行(僧伽藍摩을 찾아서) 81

마음으로 찾아 가는 寺(34회 차-3)

마음으로 찾아 가는 寺(34회 차-2)      -2)에 이어서 적는다.●지금까지 사찰 탐방을 하면서 이렇게 매우 위험한 경험을 하기는 처음이다.210: 道德庵: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산62-3.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佛國寺)의 말사이다.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도덕산(道德山) 중턱에 있다. 지금은 폐사된 신라 때의 절 정혜사(淨惠寺)의 12암자 중 하나로, 신라 경덕왕 때 건립되었다. 원래 두덕암(斗德庵)이라고 부르다가 조선 중종 때의 문신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이 정혜사에 잠시 머물러 수학할 때 도덕암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경주향교의 위패를 보관한 곳이기도 하다.경북 경주시 안강읍과 영천시 고경면, 임고면을 경계로 하는 자옥산(紫玉山·570m)과 도덕산..

마음으로 찾아 가는 寺(34회 차-2)

마음으로 찾아 가는 寺(34회 차-2)  1)에 이어 계속 적는다.국보 제 40호 정혜사지 13층 석탑은 백률사 뒤에 있다. 208:石窟庵:경북 경주시 석굴로 238. 世界文化遺産. 이칭 석굴암 석굴,석불사, 조가절,趙家寺.경주시 토함산 동쪽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김대성이 창건한 사찰 암자이다. 창건 당시의 이름은 석불사였다. 국보 제24호이며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김대성 개인의 발원에서 시작되었지만 경덕왕의 원찰로서, 또 나라를 수호하려는 국찰로서 경영되었다. 자연석을 다듬어 만든 인공석굴 구조에 본존불상을 중심으로 정교한 계산 속에 배치된 아름다운 불상들은 완벽한 불국토를 연출한다. 종교성과 예술성에서 우리 조상이 남긴 가장 탁월한 작품이자 전세계의 종교예술사에서도 ..

마음으로 찾아 가는 寺(34회 차-1)

마음으로 찾아 가는 寺(34회 차-1)  1.일    자:2024.12.17(화) 2.누구랑:배○호,정○화,我 心齋3.오늘 찾은 寺:2번째로 경북 경주시에 있는 사찰을 탐방한다. 4.일   정:8시 30분 구서역~석굴암~불국사~백률사~점심~도덕암~사주암~금정사~구서역~저녁.5.오늘까지 212번째 사찰을 탐방했는데 오후 일정의 도덕암,사주암,금정사를 탐방할 시 아주 특별하고 위험한   경험을 하였다.-3)에서 설명한다.207: 佛國寺:경북 경주시 불국로 385.   世界文化遺産.5천년 장구한 세월동안 발전해온 우리 민족문화의 정수로 천년세월 너머 현대의 무지한 중생들에게 불국토의 장엄함과 사모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불국사. 528년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의 발원으로 불국사 창건.불국사의 창건에 관한 기록으..

마음으로 찾아 가는 寺(33회 차-3)

●마음으로 찾아 가는 寺(33회 차-3)  -2)에 이어서 적는다.206.骨窟寺:경북 경주시 문무대왕면 기림로 101-5.경주에서 동해안으로 약 20k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함월산 불교 유적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6세기 무렵 신라시대 서역에서 온 광유성인 일행이 약반전산에 12개 석굴로 가람을 조성하여 법당과 요사로 사용해온 인공 석굴사원이다. 응회암 절벽을 깎아 만든 것으로 한국의 둔황석굴[敦煌石窟]이라 불린다.함월산 응회암 절벽에는 석굴로 여겨지는 구멍이 곳곳에 뚫려 있는데, 맨 꼭대기에 마애여래좌상이 조각되어 있다. 보물 제581호로 지정된 이 불상은 높이 4m, 폭 2.2m 정도의 크기로 제작 연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의견이 엇갈린다. 세련되지 못한 옷주름 때문에 삼국..

마음으로 찾아 가는 寺(33회 차-2)

●마음으로 찾아 가는 寺(33회 차-2)    -33회차-1)에 이어서 적는다.205.祗林寺:경북 경주시 문무대왕면 기림로 437-17(祇-땅귀신 기, 다만 지)  기림사(祇林寺)는 함월산(含月山)에 있다. 함월산이라는 이름은 달을 머금은 듯한 산세에서 유래한다. 기림사의 지세는 물길이 훤히 열려 있고, 용과 봉황이 춤추는 듯하며, 왼쪽으로는 밝은 기운이 비추고, 오른쪽으로는 뭇 봉우리가 절을 에워싸고 있다고 할 만큼 유려하다. 처음 함월산 기림사는 천축국에서 온 광유선인(光有聖人)이 창건하여 임정사(林井寺)라고 불렀다. ‘임정’이라는 말은 대범가(大梵家)라는 뜻이다. 특히, “절 마당에는 오색의 꽃이 피는 우담바라화가 산재하고, 다섯 곳에서 흐르는 샘이 언제나 넘쳐나며, 꽃과 대나무가 서로 밝게 빛나니..

마음으로 찾아 가는 寺(33회 차-1)

마음으로 찾아 가는 寺(33회 차-1)  1.일    자:2024.12.3(화) 2.누구랑:배○호,정○화,我 心齋3.오늘 찾은 寺:경북 경주시에 있는 사찰이 많아 4회에 걸쳐 탐방할 예정. 4.일   정:   9시 구서역~9시 50분 경주 분황사지~11시 기림사~11시45분 골굴사~  13시 15분 감은사지~13시 50분 보덕암~점심~14시 45분 문무대왕릉  15시 15분 연지암~16시 45분 부산 도착~저녁 후 해산.기타-비교적 가까운 거리라 이동거리는 250km.201:芬皇寺:경북 경주시 분황로 94-11.634년(선덕여왕 3)에 창건(創建)되었다.국보 제30호로 지정된 모전석탑(模磚石塔)을 비롯하여, 화쟁국사비 비석대(和諍國師碑 碑石臺)·석정(石井)·석조(石槽)·초석(礎石)·석등·대석(臺石)과 사..

마음으로 찾아 가는 寺(32회 차-2)

●마음으로 찾아 가는 寺(32회 차-2)         -32회 차-1에 이어 계속 적는다. -대산사 가는 길도 저수지 둑으로 간다.이런 경험도 처음이다. 198. 臺山寺: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옥산길 248-170.화악산(華岳山)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월은산(月隱山)에 자리 잡고 있는 사찰이다. 월은산은 제비가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다.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덕양리에서 대산사(臺山寺)로 오르는 산길이 뱀의 모양과 같아 뱀이 제비 알을 훔쳐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지대석을 멧돼지 형상으로 만든 돼지 탑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2000년 여름 대산사 경내 밭에서 발견된 천수관음상(千手觀音像) 수인에서 대산사의 내력을 느낄 수 있다.        199.竹林寺: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홍도길 205-5.죽림..

마음으로 찾아 가는 寺(32회 차-1)

마음으로 찾아 가는 寺(32회 차-1)  경북 청도군의 전통사찰을 2차로 탐방한다.1.일    자:2024.11.12(화) 2.누구랑:배○호,정○화,我 心齋3.오늘 찾은 寺:경북 청도군 소재 德寺 외 6곳4.일   정:9시 구서역~10시 10분 德寺~10시 50분 대적사~11시 50분 용천사~12시 30분 점심(대원 추어탕)13시 30분 대산사~14시 30분 죽림사~14시 50분 청도읍성~15시 20분 신둔사~17시 부산 도착 후 저녁.5.기타:이동 거리가 비교적 적은(250km) 탓에 일찍 귀부하여 상당히 편안했다.195.德寺:경북 청도군 화양읍 소라길 16-107.덕사의 창건은 신라 말 고려 초라고 전해지나 문헌이나 고증이 없어 상세한 사실은 알 길이 없고 현재의 덕사가 세워진 것은 조선 선조 때이다..

마음으로 찾아 가는 寺(31회 차)

●마음으로 찾아 가는 寺(31회 차)●31회 차에 소개하는 곳은 개인으로 여행 시 탐방했던 安國寺입니다.194.安國寺:전북 무주군 적상면 산성로 1050 .적상산성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찰 안국사는 고려 충렬왕 3년(1277)에 월인화상이 지었다고 전한다. 광해군6년(1614) 적상산성 내에 사각이 설치되고, 인조 19년(1641)에 선운각이 설치되어 적상산 사고로 조선왕조실록과 왕의 족보인 선원록이 봉안되었다. 이때 사고를 방비하기 위하여 호국사를 지었으며, 안국사는 그 전부터 있던 절이었으나, 호국사와 더불어 이 사각을 지키기 위한 승병들의 숙소로 사용되어 안국사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졌다. 적상산 양수발전소 건설 때문에 이 사찰은 호국사지의 위치로 옮겨져 안국사가 호국사지에 있다. 전각 15여 개로 1..

마음으로 찾아 가는 寺(30회 차-3)

마음으로 찾아 가는 寺(30회 차-3)          마음으로 찾아 가는 寺(30회 차-2)에 이어 적는다. 193번째 찾은 사찰은 사리암(邪離庵)에 대한 것이다.사리암(邪離庵)은 경북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 뒤 해발 500m에 위치한 암자이다.비구니 사찰이자,한국의 대표적인      나바존자 기도처이다.3번 와서 기도하면 1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소문이 있다.사리굴(邪離窟)은 운문산에 있는 네 곳의 굴 중 하나이다. 즉 동쪽은 사리굴(邪離窟), 남쪽은 호암굴(虎巖窟), 서쪽은 화방굴(火防窟), 북쪽은 묵방굴(墨房窟)로서 옛날에는 이 굴에서 쌀이 나왔는데 한 사람이 살면 한 사람 먹을 만틈의 쌀이, 두 사람이 살면 두 사람 몫의 쌀이 나왔다고 한다.사리암은 고려초 보양국사(寶壤國師)가 930년에 초창..